4.3 제주도 기행 중 들었던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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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제주도 기행 중 들었던 상념들
학살의 규모
2014년 민주노총 정치위원회 연수로 아르헨티나를 방문하고 1970년대말부터 자행된 미국 콘도르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관련 유튜브 동영상 (임황석 계정)
https://youtu.be/yptvs3kVQns
위키 백과: 콘도르작전 설명
https://ko.wikipedia.org/wiki/콘도르_작전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희생된 죽음이 3만명에 이르렀다고 해서 제주도 4.3 학살 사건의 규모와 우연히 맞아 떨어져 너무 놀라 썼던 예전의 감상문이 생각났다.
사람의 죽음을 규모로 판단하고 얘기하는게 너무나 예의에 어긋나고 억울한 각각의 사연을 경시하는 것 같아 예전 글이지만 죄스럽기도 하다.
http://www.kfccu.org/bbs/view.php?code=freeboard&boardid=7373&page=1
올해 다시 기행을 다녀오면서 이와 관해 들었던 상념은 아르헨티나는 노조 간부들을 포함해서 조직을 맡고 있던 책임(?)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라면(제 글을 보고 있는 노조 간부들은 산 목숨이 아닙니다) 제주도는 그야말로 무차별적인 학살였다는 것이다. 해안선을 기준으로 내륙 산간에 있는 사람들은 다 죽여야할 대상였다.
죽음의 희생자를 같은 규모라 해서 비교하는 나도 예의가 아니지만, 도대체 이 정도는 죽여야지 우리를 따르겠지 하고 기획한 책임자는 말 그대로 crazy psycho-pass 아닌가? (미국놈일 거 같아 영어로 표현합니다)
2. 4·3 학살을 알게 된 기억
87년은 내가 중2때 였다. 소위 민주화된 이후 몰랐던 역사적 사실들이 봇물처럼 터져온다.
80년 광주항쟁, 일제 강점기 정신대 문제, 그리고 3만명이 학살당했다는 4·3항쟁.
소위 사춘기 소년이 더 놀랍고 궁금한 건 그러한 사실이 있었던 것 보다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
내가 무식해서 였나, 사회적 은폐였을까?
지금 이 정부 비판도 외신을 통해 우리는 듣고 있으니 지금이 그때보다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 있나?
3. 근대를 극복하는 근대화의 시대
내가 살아온 한국이라는 시대의 과제는 전근대를 극복하자는 근대화 였다.
전근대의 극복할 대상은 포장되지 않은 도로, 상하수도 시설, 푸세식 화장실였고 따라가야 할 나라는 미국였다.
4.3 학살은 전근대의 산물였던가, 전근대를 극복하는 현대를 알리는 신호탄였을까?
미국에게 물어보고 싶다.
4. 김익렬과 조병옥
김익렬 9연대장은 김달삼 무장토벌대 대장과 양자 회담에서 사건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을 했지만 이후 해임됐다.
이하 나무위키 검색 김익렬 인용
생전에제주 4.3사건당시 원통하게 죽은 제주도민을 옹호코자 쓴 회고록 《4·3의 진실》을 남겼고, 자신이 죽은 뒤에 출판하라고 가족들에게 유언을 남겼다. 그의 회고록 원본이 현재 4.3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나는 제주 4·3사건을 미군정의 감독 부족과 실정으로 인해 도민과 경찰이 충돌한 사건이며, 관의 극도의 압정에 견디다 못한 민이 최후에 들고 일어난 민중 폭동이라고 본다. 당시 제주도 경찰청장이나 제주군정장관, 경무부장 조병옥씨나 미 군정장관 딘 장군 중에 한 사람이라도 사건을 옳게 파악하고 초기에 현명하게 처리하였더라면 극소수의 인명피해로 단시일 내에 해결될 수 있었던 사건이라고 확신한다.’ - 김익렬 회고록 《4.3의 진실》(1969년)
김익렬은 오라리를 습격한 것이 경찰들의 소행임을 언급하며 온건 화평 전술을 주장했지만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조병옥에게 좌익이라고 매도당했다. 김익렬의 아버지가 공산주의자였고, 김익렬과 김달삼이 일본 육군예비사관학교 동기임을 회의에서 폭로하며 트집을 잡았다. 이 때문에 김익렬은 조병옥에게 달려들어 주먹다짐을 벌였다. 딘 장관이 토벌 작전으로 방침을 결정함에 따라 김익렬은 용공분자라는 의혹을 받고 5월 6일 9연대장에서 해임,여수시주둔 14연대장으로 전출되고 만다.
조병옥은 4.3학살에 책임이 큰 미 군정청 경무부장였다. 시종일관 대량학살을 지시하고 이를 이행하도록 했다. 나중에 이승만에 반대해 대통령후보로 나왔다 병으로 사망했다.
그 아들 조순형 의원도 민주당 출신이지만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 선 종잡을 수 없는 위인였다.
5. 태영호와 김일성, 그리고 다시 서북청년단
북의 김일성은 우리가 주지하다시피 공식 교과서를 통해서도 솔방울을 수류탄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라면 당연히 4.3에도, 5.18에도 개입했을 것이다. 신화판은 자신이 직접 건너왔을테고 역사판으로는 무장공비를 보냈을테다. 북에서 배운 것을 그대로 얘기해 주는 태영호는 진심을테다. 당연히 믿고 배웠을테니.
윤석렬 대통령은 본인이 4.3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대신 사절단으로 서북청년단이란 3명을 보냈나 보다. 평화공원에 갔더니 4.3을 비하하는 플랭카드가 버젓이 걸려있었다. 공원이 뭐 추모하는 장소가 아니라 좌우 주의주장을 모두 전시하는 축제 장소인가? 자신이 살인자임을 주장하며 피해자를 기리는 공원과 무덤을 찾아가서 시위하는 이들은 현대적인가, 전근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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