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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 심화 해소할 수 있다면
유리지갑도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양극화를 넘어⑥] 노무현 대통령 신년 연설에 띄우는 편지
    이봉렬(solneum) 기자   
 
 
 
노무현 대통령님, 보십시오.

내일(18일) TV 신년 연설을 통해 올 한해 국정 운영의 방향을 밝힌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 편지를 씁니다.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10년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많은 돈을 벌진 못했지만, 수도권에 방 3개짜리 전세에 자가용도 하나 갖고 있습니다. 아이들 공부시키고, 저희들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 서민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안정적일지 몰라도 몇 년 후의 미래도 안정적일 수 있다는 믿음은 갖고 있질 못합니다. 그게 제 삶을 짓누르는 가장 큰 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면, 교통사고를 당해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큰 병이라도 생겨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전 서민 대신 빈민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IMF가 가르쳐 준 교훈은 이 나라에서 중산층과 서민, 빈민 사이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겁니다. 어느 한순간 발을 헛디디면 다시는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스스로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주변 여건에 따라 내 삶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 나라에서 빈민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 하는 것은 대통령님도 뉴스를 통해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혼자 지내던 9살 어린이가 개에 물려 죽었습니다. 이혼한 부모나 일 나간 할아버지,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정부, 그 중에서 아이가 의지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부모가 일 나간 사이 집에 불이 나서 죽은 아이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아플 뿐이었지만, 지금은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무한경쟁의 이 냉엄한 현실에서 뒤처지면 어떤 험한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식은 땀을 흘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수출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종합주가지수가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는 있지만, 그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서울역 지하보도에 그 소식을 전하는 신문지를 덮고 잠을 자고 있습니다.
 
'겁나서' 아이를 낳지 않는 것, 현재진행형입니다

너무 극단적으로만 생각한다고 탓하시렵니까? 그럼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제 큰 아이가 지난 한 해 동안 방과 후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웠습니다. 그 작은 아이가 그 동안 배운 실력을 보여준다며 바이올린을 켤 때, 전 속으로 제 아이가 바이올린에 소질이 없기를 바랐습니다. 예능을 전공으로 하는 게 가계에 얼마나 큰 부담이 되는지를 먼저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아이가 언젠가 볼거리를 앓을 때는 혹시 큰 병에 걸린 게 아닐까 하는 걱정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아이가 아플 때 혹시나 제대로 된 치료를 해주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까 두려웠던 겁니다.

"적어도 국가로서는 키우기가 겁이 나서, 공부시키기가 겁이 나서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난 10일 여성계 신년인사회에서 대통령께서 한 이야기입니다. 죄송합니다만 '겁이 나서 아이를 낳지 않는 상황'은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현재진행형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이를 좋아하는 제가 더 이상 낳기를 포기한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게 겁이 나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예술에 재능이 있어도 시키지 못하고, 좋아하는 과목이 있어도 공부를 시키지 못할 때 부모의 가슴은 무너집니다. 아이가 아플 때 아이가 겪을 고통보다 치료비 걱정을 먼저 하게 되면 그보다 더 큰 절망감은 없을 것입니다. 교육과 의료만큼은 정부와 이 사회가 책임질 수 있어야 겁내지 말고 아이를 낳으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출산장려금을 주고, 세금을 깎아 주고, 보육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도 우리 아이가 살아갈 미래가 무한경쟁과 적자생존의 사회라면, 출산이 곧 아이에게 죄 짓는 일이 된다면 누가 출산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양극화, 나도 끝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

신년 연설의 주요 내용으로 올 해는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한다고 들었습니다. 늦었지만 화두를 제대로 잡은 것 같습니다. 올해는 작년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실 양극화 사회라고는 하지만 아직 양 쪽 끝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이들의 숫자가 좀 더 많습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이들도 머지 않은 미래에 한쪽 끝으로 밀려나게 될 거라는 불안감을 갖고 살고 있습니다. 양극화의 진행 속도에 따라 그 불안감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그 불안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양극화 해소'는 곧 서민과 중산층의 불안감을 해소시켜 주는 일이어야 합니다. 회사에서 짤려도, 불의의 사고를 당해도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보장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누군가의 보살핌이 보장되고, 교육을 받기 원하는 학생들은 누구나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병이 났을 때 돈보다 치료가 우선 될 수 있기를 바라는 겁니다.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한다고 하니까 눈치 빠른 일부 언론들이 벌써부터 조세부담을 이야기합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돈을 더 내 놓으라고 할까 봐 지레 어깃장을 놓습니다. <매일경제신문>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율이 (OECD 국가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미국과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며 대안으로 '생산적 분배'를 이야기합니다. 분배보다는 생산에 방점이 찍힌 이 말은 곧 성장을 우선해 온 이제까지의 경향을 그대로 이어가자는 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문화일보>는 양극화의 "가장 큰 원인은 경기침체와 저성장"이라며 '일하는 복지'를 주장합니다. 저들에겐 컨테이너에 가득 쌓인 수출 상품과 붉게 물든 주식시세판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그러면서 양극화 해소를 통해 노 대통령이 서민층을 "지지세력화하려는 의도"라고 흘기고 있습니다. 저들도 양극화 해소가 서민을 이롭게 한다는 것만큼은 부인하지 못하는 겁니다. 서민과 중산층의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게 마땅합니다.

제 봉급쟁이 유리지갑도 내놓겠습니다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일할 능력이 있는데도 일하지 않는 이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부동산 투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일확천금을 벌어 놀고 먹는 이들에게 내리는 철퇴입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는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가 없거나 여건이 되지 않아 일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질 뿐, 그들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성장을 방해하는 비효율적인 일로 치부될 뿐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저는 일할 직장이 있어 아직은 먹고살 만합니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더 내놓으라고 하면 봉급쟁이 유리지갑이지만 더 내놓겠습니다. 조세부담율이 미국과 일본을 뛰어 넘어 OECD 국가 중 최고로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끝없이 심화되는 지금의 양극화 현상과 닥쳐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만 있다면 아낌없이 내놓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사교육비 쓰지 않고 내놓겠습니다.

부자 신문들의 엄살에 속아 넘어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은 언제나 먹을 것이 모자라는 게 아니라 나눔이 모자랐습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나눔이 더 절실한 때입니다.

대통령의 임기 중 제대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때는 올 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릅니다. 내일 연설을 하기 전에 국민 소득 2만 불 구호 아래서 개에게 물려 죽은 아이의 심정을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겠다 했던 후보 시절의 다짐도 다시 떠올려 보기 바랍니다.

내일, 불안한 미래에 희망의 씨앗이 되는 그런 연설 내용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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