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 보도: 니가 해라 '이사 진급'…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서 임원을 기피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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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해라 '이사 진급'…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서 임원을 기피하는 까닭
"이사라는 허울 좋은 명함 주면서 임금 깎고, 퇴사 유도" … 노조 가입 안 되니 회사 마음대로 근로조건 변경
newsdaybox_top.gif 2013년 09월 30일 (월) 양우람 btn_sendmail.gifagainst@labortoday.co.kr newsdaybox_dn.gif
▲ 7개 조직이 참여하고 있는 건설엔지니어링노조연대회의가 지난 달 말 업계 노동자들의 심각한 구조조정 현황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후 <매일노동뉴스>의 취재 결과 최근 업계에 확산되고 있는 강압적인 진급 행태가 이들의 고용불안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기업노련

종합 건설엔지니어링 회사인 (주)동명기술공단종합건축사무소에서 일하는 김아무개(45)씨는 지난달 초 부하직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팀장님, 홈페이지를 보니 이번에 이사로 승진하셨는데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사고소식이라도 전하듯 침울했다. 전화기를 든 김씨의 표정도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십팔년 전 이 회사에 입사했다. 이직 한번 없이 건축설계사로 한 우물만 팠다. 지난 2010년 부장 진급을 한 후 3년 만에 이사로 승진했다.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고속 승진이다. 그런데 진급 소식을 전해 들은 그의 얼굴이 왜 어두워졌을까.



이사진급은 곧 계약직 전환?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에 강제 진급 바람이 불고 있다. 원치않는 경영진으로 만든 후 종국에는 회사를 나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사로 진급한 당사자를 만나 그 사정을 들어봤다.

김아무개씨는 며칠 후 부서장의 호출을 받고 본사로 향했다. 그곳에는 한 장의 계약서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이사가 되고 나서 겪어야 할 고충(?)에 대해선 소문으로 알고 있었지만 계약서 문구를 살펴보고 생경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사로 진급한 순간 그동안 적용받던 호봉제 대신 연봉제 계약을 맺는다는 것이 핵심이었고요. 성과를 평가한 점수가 명시돼 있더군요. 어떤 기준에서 그런 평가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김씨가 받은 점수는 B였다. 이로 인해 그의 연봉은 진급 직전 5천500만원이었던 것이 4천500만원으로 줄었다. 회사는 이사 진급자들을 S에서 D까지 5단계로 나누고, S등급(임금 동결)에서 한 단계 낮아질 때마다 500만원의 연봉을 깎았다. 경영진이라는 이유로 야근과 연차수당이 사라진 것은 덤이었다.

공공운수노조 건설엔지니어링지부 동명지회(지회장 진기영)에 따르면 올해 김씨와 같이 사전 통보 없이 이사로 진급한 인원은 총 63명이다. 이 중엔 부장 진급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한 사례도 있다.

진기영 지회장은 "회사가 90여명의 부장 직급자 전원을 진급대상자로 분류하고 사전 예고도 없이 퇴근 후 홈페이지에 일제히 공시하는 방법으로 진급을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강압적인 방식의 진급이 이뤄진 것은 지난 2011년부터다. 당시 부장급 직원의 대다수인 100여명이 한꺼번에 이사로 진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듬해엔 부장급 직원이 줄어 이사 진급자가 20여명으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 회사는 연봉제 계약으로 전환된 이사 진급자들에게 퇴직금 정산을 이유로 사직서 작성까지 강요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대다수의 이사진급자들이 퇴직금 정산을 위해 사직서에 서명한 후 재입사하는 형태로 일하고 있다”며 “한마디로 이사라는 허울 좋은 명함 아래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계약직이 된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건설엔지니어링 업계로 확산되는 이상한 임원 승진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는 강제 진급은 건설엔지니어링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동명지회를 포함한 엔지니어링노조연대회의 소속 7개 노조를 조사한 결과 이 중 4곳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견됐다.


연대회의는 지난 3월 공공운수노조 건설엔지니어링지부 동명지회·동호지회, 유신지부, 공공운수연맹 선진노조·한국항만기술단노조, 건설기업노련 삼안노조·한국종합기술노조 등 7개 단체가 건설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의 노동권 향상을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이 중 한국항만기술단에서도 건설엔지니어링 노동자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진급이 이뤄졌다. 회사는 그동안 부장 진급 후 최소 4년 이상이 지나야만 이사 승진 대상자로 분류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부터 ‘특별진급’이라는 명칭으로 승진한 지 1~2년 된 부장들이 이사로 진급하는 사례가 나타났다. 한국항만기술단노조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 약 30여명이 이사로 진급했는데, 이 중 30%가 넘는 10명 이상이 특별진급 형태로 이사가 됐다. 비록 동명기술공단종합건축사무소와 달리 진급자들에게 사전 통보와 동의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조영중 한국항만기술단노조 위원장은 “기술사 자격을 취득했다면 모를까 아무런 근거 없이 특별진급이 이뤄지고 있다”며 “회사가 임원들에게 각종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점을 악용해 조기 진급을 강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선진엔지니어링에서도 올해 3월 처음으로 2명의 강제 진급자가 발생했다. 노세호 선진노조 위원장은 "소수이긴 하지만 회사가 이를 어떻게 악용할지 몰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주)유신은 기간으로 따지면 승진한 지 4~5년 된 부장들을 대상으로 정상적인 진급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급여체계가 달라져 아무도 이사 진급을 원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남 보성의 건축현장에 감리로 파견된 함아무개(47)씨는 올해 1월 부장으로 승진한 지 5년 만에 이사로 진급했다. 이후 주재비를 포함해 8천만원이던 연봉이 6천만원으로 줄었다.

“하는 일은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데 이사로 진급하면서 연봉이 확 줄었습니다. 다른 업종은 서로가 진급하려고 난리라는데, 이 업종은 서로가 피해가려고 난리죠.”



노조 품을 벗어난 진급자들 … 연봉제 계약에 속수무책




이처럼 이사 진급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저하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사 진급은 곧 노조 탈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대회의 소속 노조 대부분은 회사와 단체교섭을 통해 부장급까지를 노조 가입대상 범위로 정했다. 또 단체협약에는 호봉제를 기반으로 한 급여체계가 명시돼 있다. 조합원에서 배제되는 이사가 되면 이러한 단체협약의 보호막이 사라지는 셈이다.

한 노조 위원장은 “사측은 이러한 진급형태가 정당한 인사권이라고 주장하고, 진급이 이뤄지는 순간 노조의 테두리를 벗어나기 때문에 이들의 연봉제 전환을 막는 것은 어렵다”고 토로했다.

노조 입장에선 이러한 진급행태는 조합원수의 감소를 의미한다. 실제 강제 진급이 이뤄지고 있는 한 노조에서는 최근 3년 사이 3분의 1가량의 조합원이 감소했다. 이 같은 현상은 이사로의 진급이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지는 반면 신규채용이 거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유신의 경우 총 500여명의 건축감리사 중 400여명이 이사직급 이상의 경영진으로 분류돼 있다. 회사 입장에선 무늬만 이사인 이들에게 기존 업무를 그대로 맡길 수 있으니 굳이 신규채용에 나설 필요가 없는 셈이다. 연대회의는 이러한 강제적인 이사 진급 행태에는 노조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혜종 유신지부장은 "회사가 노조를 배제할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은 불이익을 당해도 아무런 항의를 할 수 없는 구조로 만드는 것"이라며 "강제 진급은 이를 악용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이사 진급 후 업무변화 없으면 노조 가입 가능"




회사측은 이러한 진급형태에 대해 “건설업의 불황과 업종의 특성 탓”이라며 "노사관계를 염두에 둔 의도적인 근로조건 악화와 연결짓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한 건설엔지니어링 업체 관계자는 “업계 전반의 인적구조가 유사하고 이직이 잦기 때문에 본인이 이사 진급을 원하는 경우도 있다”며 “설계·감리는 외부에서 일을 수주해야 하는 용역인 만큼 일정 직급을 갖는 것이 회사와 본인에게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건설경기 불황으로 인해 전체 직원에 대한 수당절감 노력이 있는 것이지 이사 진급을 했다고 수당을 주지 않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연대회의는 이사 진급자 대다수가 임금저하와 고용불안을 호소하고 있는만큼 대책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 같은 웃지못할 사례가 업계 전체로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연대회의 관계자는 “소속 7개 회사를 포함한 주요 업체 사장단이 정기모임을 갖고 경영방침을 공유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의 강제 진급 행태가 전체 사업장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연대회의는 고용노동부의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는 “회사가 조합원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진급을 시켰다면 이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지만 그동안의 승진관행이나 진급 후 업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조합원의 범위를 정하는데에는 이사라는 직책이 아니라 실제 그들이 사용자의 역할을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진급 이후에도 업무에 변함이 없다면 교섭을 통해 다시 이들을 단체협약의 보호 아래 두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강제 진급은 신종 구조조정 수단?




지난달 이사로 승진한 (주)동명기술공단종합건축사무소의 김아무개씨의 경우 강제진급으로 인해 과장급 말호봉보다 봉급이 적었다. 식사나 회식자리에서 월급 얘기가 나오면 딴 곳으로 눈을 돌리기 일쑤다. 그가 서명한 연봉계약서에는 “구체적인 계약 내용을 외부에 발설하지 마라”고 명시돼 있었다.

“한참 후배보다 월급이 작은 팀장이라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죠. 처음 계약서를 받아든 순간 회사가 대놓고 다른 곳을 알아보라고 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야 어떻게든 버티며 방법을 찾아보려 하지만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는 진급자들이 많아요.”

공공운수노조 건설엔지니어링지부 동명지회는 이처럼 강제진급으로 이사가 된 후 회사를 떠난 사람들이 약 40%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연대회의가 자체 집계한 인력조정 현황을 보면 2010년 이후 7개 건설엔지니어링 업체 중 5곳이 구조조정을 통해 직원수를 줄였다. 5곳의 직원수는 같은 기간 5천580여명에서 4천390여명으로 22.3%나 줄었다.

연대회의는 건설엔지니어링 업계 전반에 불고 있는 감원 바람에 진급으로 인한 반강제적 퇴사자까지 더해질 경우 조합원들의 고용이 크게 위협받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구태신 삼안노조 위원장은 “강제진급은 건설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을 단체협약의 틀 밖으로 끌어낸 뒤 강압적인 연봉제 적용으로 스스로 회사를 떠나도록 하는 악의적인 구조조정 수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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