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27위 대림그룹 계열사인 대림산업건설노동조합과 고려개발노동조합의 민주노총 탈퇴 과정에서 이준용(69) 그룹회장과 임원들의 '그릇된 노사관'에서 비롯된 전방위적인 민주노총 탈퇴 압력이 있었음이 <민중의소리> 취재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준용 회장과 임원들의 연맹탈퇴 전방위적 압력 확인돼
고려개발노조는 17일 대의원대회에서, 대림산업건설노조는 19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남궁현) 탈퇴를 결정한 바 있다.
양 노동조합의 탈퇴에 앞서 건설산업연맹은 16일 기자회견을 갖고 "이준용 그룹 회장이 계열사들의 노조 무력화를 직접 진두지휘 하고 있다"라고 규탄하며 "민주노총 탈퇴공작을 즉각 중단하라"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와관련 <민중의소리>가 19일 입수한 'CEO와의 대화 내용 공지'와 '노사 대화 내용 공지'에는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노동3권을 인정하지 않는 이준용 그룹 회장의 삐뚤어진 노사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또 그룹 오너의 말 한 마디에 '부화뇌동'한 임원들의 전횡도 적나라하게 포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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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와의 대화 내용 공지'와 '노사대화 내용 공지'. 그룹 인사관리팀에서 정리한 자료로 이준용 회장의 그릇된 노사관을 확인할 수 있다.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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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교섭을 요구하는 노동조합의 공문을 받고 모골이 송연했다는 이준용 회장. ⓒ민중의소리 정택용 기자 |
'CEO와의 대화 내용 공지'는 3일 종로구 수송동 그룹 사옥 3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내용을 그룹 인사관리팀에서 정리한 자료다. 이 대화에는 이준용 회장과 부회장, 노조전임자 및 대의원, 임원, 부서장, 5분 TF팀 등이 참석했다.
'노사 대화 내용 공지'는 8일 그룹 사옥 3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노사 대화 내용을 인사관리팀에서 정리한 자료로, 대화에는 사측에서 이준용 회장과 조ㅇㅇ 상무, 박ㅇㅇ 부장 등이, 노측에서는 이문영 노조위원장, 유ㅇㅇ 사무국장, 이ㅇㅇ 정책실장 등이 참석했다.
위 자료와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대림산업건설노동조합의 민주노총 탈퇴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사건의 발단은 3월 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건설산업연맹은 대림산업건설 대표이사 앞으로 <5월 31일까지 2006 임단협이 원만히 타결되기를 바랍니다'란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2006년 임금단체협상 교섭과 관련 "연초 대의원대회 결정에 따라 5월말까지 귀 노사간 임단협 교섭 상황을 지켜본 뒤 6월 1일부로 임단협 미타결 사업장은 연맹에 교섭권을 일괄 위임"한다는 내용이었다.
헌법에 보장된 단체교섭권 부정하는 오너의 삐뚤어진 노사관, 부화뇌동한 임원들
대림산업건설노조는 4월 19일 사측에 교섭요청 공문을 보내 25일 임단협 교섭을 하자고 제안했다. 교섭 전날인 24일, 이준용 회장은 노조 위원장을 포함, 전임자 5명을 불러 "평상시 아무때나 얘기할 수 있는데 교섭이란 절차가 왜 필요하냐?"라며 "건설산업연맹이 보낸 공문이 무슨 취지냐?"라고 물었다.
다음 날 교섭은 예정대로 열렸고 노사는 교섭위원 상견례와 향후 교섭일정은 간사간 협의하기로 하고 첫 대면을 끝냈다.
5월 3일 이준용 회장은 종로구 수송동 사옥 3층 대회의실로 부회장과 노조전임자, 대의원, 임원, 부서장 등을 불러 일장 연설을 한다.
그룹 인사관리팀에서 정리한 이준용 회장의 발언 중, (노조의) 단체교섭 개최 요청 공문에 대한 부분을 아래 그대로 옮긴다. 헌법에도 보장돼 있는 단체교섭권을 부정하는 천박한 인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연맹의 공문에 대해 노조 위원장은 별 것 아니라 하고, 전체 맥락의 연결이 안되어 긴가민가 하고 있는데 노조로부터 4월 19일자로 단체 교섭 개최를 요구하는 공문을 받고서야 무언가 연관성을 찾은 듯하여 지나친 표현인지 모르나 모골이 송연했음.
노조가 하는 일이라는 것이 직원들의 처우를 어떻게 하면 개선할 것인가를 자나깨나 고민하는 것이라고 하면, 그 점에 있어서는 임원들이며 경영진은 더 했으면 더 했지 모자라지 않는 고심을 하며 일년 내내 근무하는 사람들임.
그럴진대, 누가 누구를 상대로 무엇을 협상을 하자는 것인지, 공문을 받는 사람들은 모조리 직원들 호주머니나 터는 사람으로 생각했다는 것인지 심한 모멸감을 느꼈음.
그동안 우리는 몇 년동안 상당한 진통을 거치고, 오랫동안 서로 의논하고 고심하며, 예사롭지 않은 우리만의 문화를 이루어 왔다고 생각함.
단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노조 전임자의 급여를 직원들의 급여에서 충당하고 있는 제도는 대림 이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화임.
과거를 더듬어 보면, ㅇㅇㅇ 위원장 시절인 2002년 11월 13일 회사측 10명 노조측 16명 합하여 26명이 밤 8시 30분에서 다음날 아침 8시 15분까지 밤새 협상한 것이 12차 회의라고 하고, 그래도 회사가 소극적이라며 노조 위원장이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열심히 일하려고 출근하는 직원들 붙잡고 파업 하자며 선동하던 것을 보다 못해, 본인이 전체 직원 회의를 소집하여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협상 그만 두고, 본인에게 맡겨 달라고 했었음
그 이후 우리는 협상이라는 것 없이, 직원들 처우를 개선할 요인이 생기면 그때 그때, 또는 그러한 요인이 있어도 다음해에 더 크게 반영하면서, 월급 낭비하는 절차나 수순의 노사 협상 없이 우리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도모해 왔음."
이준용 회장은 "임단협 하느라고 모여있는 1분 1초가 모두 직원들의 처우 개선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면서 "노조 활동의 방향을 어떻게 잡아갈 것인지, 연맹의 공문에 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지는 직원들의 몫"이라며 일장 연설을 마무리 했다.
'회장님'이 뜻을 세우자, 임원들이 받들고 나섰다. 그룹 임원들은 8일부터 회사게시판에 수백 건의 글을 올려 노동조합을 압박했다.
"이제는 노사 협상의 구태도 훌훌 벗어야 합니다. 노사간의 문제는 언제든지 시간과 장소에 구분 없이 언제라도 대화를 통해 해결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임단협이라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협의 말고 '노사협의회' 등으로 대체하여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원년이 되었으면 합니다."(플랜트사업본부 ㅇㅇ 부사장)
"우리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주 낮은 수준의 회사들과 동조하고 연맹이나 맺는단 말입니까? 절대 안될 일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일구어 온 회사인데 우리 직원들의 피땀어린 급여를 낭비하면서까지 무엇을 하자는 말입니까?"(토목사업본부 ㅇㅇㅇ 부사장)
"이 기회에 현명한 우리 직원들이 대림산업건설노조가 건노련에 가입을 꼭 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직원들은 노조원을 위한 노조가 될 수 있도록 노조 집행부의 방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토목사업본부 ㅇㅇㅇ 상무)
"우리가 건노련에 많은 회비를 납부하면서 무슨 도움을 받고 있으며, 그들의 행위가 회사 발전과 우리의 이익에 무슨 관련이 있을까요? 작든 크든, 내가 내는 돈은 내가 원하는 나의 참여가 반영되는 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나의 권리행사 아닐까요? 집행부에 바랍니다. 이제 노조 집행부는 우리가 주인이라는 바탕하에서 직접 노조원의 의견을 물어보시기 바랍니다."(기술연구소 ㅇㅇㅇ 상무)
"2002년부터 회장이 노사문제 적극 개입하며 노조 상집간부조차도 몸사려"
그룹 오너와 임원들의 전방위적 압력속에 결국 대림산업건설노조 상임집행위원회는 건설산업연맹 탈퇴를 묻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19일 실시된 투표에 조합원 1천432명 중 1천254명이 참여해 1천47명(83.9%)의 찬성으로 건설산업연맹 탈퇴 안건이 가결됐다. 반대 185명, 기권 6명, 무효 16명이었다. 18년 민주노조운동의 전통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대림산업건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노조의 연맹 탈퇴에 대해)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라며 "선배들이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민주노조를 만들었고 연맹과 민주노총을 만들면서 노동자 연대 의식을 통해 노동자들이 대접받는 세상을 위해 만들어 온 민주노조의 자랑스런 전통이 회장의 한 마디에 완전히 무너지는 상황이 서글프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02년 이후 이준용 회장이 노사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오며, 노조 일부 상집간부들조차도 목이 달아날까봐 회사의 입장을 대변하는 무기력한 노조의 역량이 현 상황을 초래한 원인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