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내일신문 9/28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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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산업 종사자들의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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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국건설기업노동조합연합
정책실장 이용규
며칠 전, 법정관리중인 모 건설사 직원과 만날 일이 있었다. 그는 나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땅이 꺼져라 한숨을 쏟아 내었다. 회사가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회사 권유로 분양 받은 미분양 아파트 때문에 밤잠을 설치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건설사가 건축비 조달을 위해 사원의 명의를 빌려 분양받은 것처럼 계약한 아파트가 화근이었다. 회사는 그의 명의로 은행으로부터 거액의 중도금 대출을 받았는데 회사 측이 이자를 제 때 납부하지 않아 그의 신용카드가 정지된 적도 있다고 했다. 이번 연체가 3번째로 앞으로는 개인 대출도 받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정규직이었고 다들 그렇듯이 건설현장에서 근무할 때는 하루에 보통 11시간 이상 일했고, 휴일근무도 밥 먹듯 한 성실한 직원이었다.
세종-정안도로 건설현장 덤프기사 15명은 임금 지급을 요구하며 근 한달 째 농성중이다. 이들은 건설사 하청업체인 H업체의 부도로 4-8개월 치 임금을 받지 못했다. 건설 현장은 보통 일당 계약을 하지만 정작 임금은 한두 달 뒤에나 지급하는 잘못된 관행(일명 유보임금)탓에 빚어진 사태였다. 게다가 하청업체 관리 감독의 의무가 있는 원청 대기업 건설사마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유난히 무더웠던 지난여름 내내, 뜨거운 태양 아래서 등에 소금 꽃이 피도록 일한 대가를 얻고자 하는 그들의 요구가 무리한 걸까.
우리나라의 연간 총 건설수주액은 93조에 이른다. 정부도 SOC(사회간접자본)투자비로 한 해 23조를 투입하고 있다. 특히 지난 2009년부터는 4대강 공사를 통해 22조라는 천문학적 거금이 투입되었다. 경기활성화 명목으로 다양한 건설사 지원제도가 마련되고 지난 수십 년간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대책이 시도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건설사 위기가 반복되고 건설 산업 종사자들의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수렁에 빠진 원인부터 규명해야 할 것이다.
상장회사인 모 건설사는 종합건설업을 영위하는 기업을 중심으로 비상장 계열사를 여러 업체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이 건설사가 수주한 공사는 회장 소유의 비상장 전문업체와 90% 이상의 금액으로 계약한 후, 다시 각 공정별로 최저가낙찰 방식으로 재하도급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건설산업기본법, 공정거래법 위반이며 또 배임에 해당하는 불법행위이다. 이 건설업체 이익의 대부분을 사주 개인이 싹쓸이해 온지 수년, 건설사의 지속가능성은 현격히 떨어지고 있다. 경영진이 의도하여 모셔 온 정계, 금융계, 법조계 사외이사가 경영감시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리도 없었다.
또한, 4대강 공사과정에서 불거진 비자금 조성방법에서 알 수 있듯 하도급 단가 부풀리기를 통해 반환된 비자금은 입찰 관련 공무원, 심사위원, 공사 감독 공무원들에게 뇌물로 쥐여주며 정치권 로비자금으로도 쓰이고 있다. 이 같은 계획적, 상습적 관행의 문제가 계속되는 한, 대규모 공사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입찰 제도를 개혁한다 해도, 작금의 건설사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건설사 사주 또는 대주주의 이익에 복무할 뿐이다.
건설사가 부실해져 워크아웃이든 법정관리에 돌입하더라도 경영진의 경영권은 그대로 인정되는 것도 문제이다. 경영주가 부실의 책임을 지지 않고 법정 관리인으로 선임되면서 직원들은 신용불량 상태로 인력구조조정 되거나 임금삭감 또는 체불을 당하게 된다. 부실 경영의 책임을 고스란히 직원들이 물려받고 있는 실정이다. 경영독점을 통한 이익은 사유화 하면서 책임은 직원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그 대안으로 독일이나 스웨덴에서 시행하고 있는 직원의 이사회 참석 또는 추천제를 한국식으로 도입해 봄직하다.
얼마 후면 민족 최대 명절 추석이다. 풍성하고 여유롭게만 느껴지던 추석명절이지만 건설 산업 종사자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을씨년스런 한가위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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